조선 선조때 약포(藥圃) 정탁(鄭琢)이라는 노 정승이 있었어요
정탁은 서애 유성룡과 함께 퇴계 이황의 제자로서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정승에 오른 명재상이었지요
특히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 장군을 신구(伸救)하는 등
임진왜란때 국난(國難)을 극복하는 데 큰 공을 세웠던 대신이었어요
그런 그가 70세쯤 되었을때 노쇄한 신체와 후학 등용을 이유로 퇴직 상소를 올렸지요
그러자 조정은 발칵 뒤집혔어요
몇번에 걸쳐 사직상소를 철회할것을 종용했으나 그의 의지를 꺽지를 못했지요
이에 따라 선조와 예조의 신하들은 여러날에 걸쳐 그의 사직을 놓고
회유하고 애원하며 철회를 종용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지요
선조는 마지못해 정탁(鄭琢)의 퇴직을 허(許) 하면서
달마다 술과 고기를 보내주는 등의 극진한 예우를 해 주기로 약속 하였지요
이처럼 스스로 관직에서 물러나는것을 치사(致仕)라고 하는데
당시로는 흔치 않은 일이었어요
심지어 그가 퇴직하여 초야에 묻힌후 그를 잘 보살펴주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해당 고을의 군수를 파직하기 까지 하였지요
치사(致仕)가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를 보여주는 일화이지요
국가적인 원로로서 우대받으며
최고의 자리에서 권세를 누리던 이가 그것을 내려놓고 물러나기란 쉬지않은 일이지요
치사(致仕)한 사람에게는 국가에서도 특별히 예우를 갖추어 주었고
본인도 그것을 자랑스러워했어요
그래서 은퇴하기 전의 관직명에다 치사라는 호칭을 추가하여 부르기도 할 정도였지요
그러나 성호(星湖) 이익(李瀷)은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치사와 관련된 글을
3편이나 올렸는데 치사가 철저히 지켜져야 함을 주장하기도 하였어요
70세 이전이라도 능력이 없거나 건강이 허락하지 않으면 스스로 치사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요즘에는 세력이 있는자는 8, 9십세가 되어도 벼슬에서 물러나지 않고
계급이 낮은 자는 외람스럽게 여겨 감히 물러나기를 청하지도 못하니
이것이 무슨 경우냐고 신랄(辛辣)하게 비판하기까지 하였지요
또한 설령 70세가 넘은 사람이 건강하더라도
찾아보면 40대, 50대에서 그만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없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이처럼 나이 70세가 넘으면 스스로 물러날줄도 알아야 하는것이
후학을 위해서나 자기 자신을 위해서나 바람직한 일이라고 주장 하였어요
물론 노마지지(老馬至智)라는 말도 있지요
늙은 말의 지혜라는 뜻으로 많은 경험을 쌓아 노련하게 지혜를 발휘한다는 뜻이지요
강태공도 80세에 가까운 나이에 재상으로 등용되어 공을 세웠고
고령임에도 훌륭한 치적을 남긴 다른 인물들의 사례도 많다는 것을 감안하면
나이 먹었다하여 무조건적으로 쓸모없는 인간으로 치부하는것은 금물이지요
그래서 성호의 글 또한 무조건적으로 절대적인 연령별 기준을 지키라고 하는 것이 아니었어요
요지는 바로 염치(廉恥)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 즉 주어질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수 있는지를 고려하여
벼슬에서 물러날지 새로 벼슬에 나아갈지를 결정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에 상관없이 무조건 벼슬에 집착한다는 것이었어요
복숭아 두개로 용사 셋을 죽였다는 이도살삼사(二桃殺三士)란 고사가 있지요
세명에게 복숭아 두개를 주면서 공이 있는 사람이 가지라고 했는데
서로 자신의 공을 내세우며 복숭아를 다투다가 결국 부끄러움에 모두 자결을 하였다는 내용이지요
비록 교묘한 계략으로 상대를 제거한다는 고사이긴 하지만 시사하는 바는 크지요
적어도 그들처럼 명분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낄 만큼
염치(廉恥)를 지닌 사람이 요즘 시대에 몇이나 있을까요?
거짖과 위선 철면피한 뻔뻔함
지금이야말로 염치(廉恥)없는 인간들이 너무도 많은 세상이지요
옛날에는 치사(致仕)라는 제도가 있듯
요즘은 60세를 전후로 정년이라는 제도가 일반화되어 있지요
그러나 옛날의 치사와 오늘날 정년의 차이점은
강제성보다는 본인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물러난다는 것에 있어요
나이 70세가 되면 벼슬을 내어놓고 물러난다는 『예기(禮記)』의 구절에서 나온 이 말은
이후로 벼슬하는 사람들의 은퇴 시기를 한정하는 근거가 되었지요
또한 치사(致仕)에 이어 만절(晩節)이라는 말도 있어요
채근담에서 말하기를
'하루해가 저물었는데 오히려 노을은 아름답고
한 해가 장차 저물려고 하는데 귤이 새로이 꽃다운 향기를 뿜는다.
그러므로 군자는 말로(末路),
즉 만년(晩年)에 다시금 정신을 백 갑절 떨쳐야 한다'고 하였지요
옛날에는 만년을 깨끗하게 보내는 것을 가장 높이 첬어요
만절(晩節)이란
만년(晩年)의 절조(節操)란 의미인데
즉 늙은 후에 부끄러운 행동을 하면 '만절을 더럽혔다'고 할정도로
노후의 삶을 중히 여겼지요
따라서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일관된 뜻으로 절조를 지켜야 하지요
즉 만년의 절의를 온전히 보존한다는 표현은
한 인물의 평생을 규정하는 최고의 찬사 중의 하나였어요
노년에 명예를 지킬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었는지도 몰라요
그렇다면 노년에 절의를 잃는 것은 어떤 경우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것은 나이 먹은 노년에도
벼슬에 연연하며 노욕(老慾)을 과시하는 것이지요
이는 노욕을 넘어 마치 노추(老醜)에 가까운 것으로서 절의를 잃을수도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인지 요즘의 나이 많은 정치인들을 보면
애처롭다못해 측은하기 까지 하지요
